꿈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_김미란 작가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꿉니다.
해석되지 않은 꿈은 읽히지 않은 편지와 같다고 해요.
꿈을 꾸는 순간은 일상과는 다른 형상으로
표현되는데요
그 꿈의 진정한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꿈’
그 꿈을 현실로 그려내는 김미란 작가를
만났습니다.
2018년 4월 9일 봄날
꽃샘추위로 한껏 껴입은 외투가 불편하지만
꽃망울이 톡톡 터진 헤이리의 가로수 덕분에 기분은 상쾌하다.
흐드러지게 핀 노란 개나리,
누군가 보낸 편지가 놓인 우편함,
봄기운에 가만가만 싹트고 있는 감자밭.
꾸미지 않아서, 더 정감있는 작업실 앞 공간을 보고 있으니
김미란 작가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곳에서 김미란 작가는 어떤 꿈을 꾸고,
또 어떤 꿈을 그리고 있을까?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진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김미란 작가가
작업실 안으로 안내한다.
잠시 어색해하는 나에게
그녀가 커피를 권한다.
커피가 가장 맛있는 시간이
바로 로스팅 후 72시간이라고 일러주는
작가가 커피처럼 부드럽다.
블랙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넓은 거실 창을 등지고 앉는다.
자연스레 햇살을 받은 그녀의 주변이
마치 꿈같이 반짝거리고 있다.
로스팅 후 72시간 된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그녀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Q1. 작가님은 언제부터 자각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셨어요?
양탄자를 타고 강을 건너는 노인1
A.김미란 작가
2011년도 아주 특이한 꿈을
꾸었어요.
강물 위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풍경이 있고,
그 강물 위를 큰 양탄자를 타고 가는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어요.
그리고 어느새 제가 양탄자에 노인과 같이
타고 있어요.
강물 위로 키 큰 나무가 군락을 이루면서
끝없이 펼쳐져 있는 거예요.
‘이것은 무슨 나무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노인이 ‘이건 사이프러스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 꿈 속에서 제가 그 노인의 양탄자에서 뛰어내려 강물 속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자각몽이 돼요.
‘물’이 제가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어떤 하나의 토템 같은 거예요.
인셉션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팽이’가 계속 돌면 꿈인 거잖아요.
그런 거처럼 ’내가 물속에 있네! 숨을 쉬어야지’ 하고 의식하게 되는 거죠.
너무나 생생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고독한
그 꿈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펜으로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미지가 너무나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아서
펜화도 그리고,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분체로도 그리고, 또 유화로도 그리고,
계속 그 작업을 한 8년째 해온 거예요.
그게 꿈 가지고 작업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예요.
Q2. 조각가로서 20여 년 동안 조각작품을 해오시다가,
그림을 해야겠다 결심하게 되신 이유가 있나요?
A.김미란 작가:
조가에서 그림으로 바꾼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조각은 힘이 든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재료를 다룰 때 준비과정이 있잖아요.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장소가 필요하고, 공구가 있어야 하고,
‘이런 과정이 작업을 어렵게 하는 구나’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조각가로서 작업할 때도
원래 그림은 계속 그려왔었어요.
손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그림이다 보니까 그림과 조각을 계
속 병행하면서 작업을 했었죠.
그렇게 어느 때는 조각을 전시했다가,
그림을 전시했다가 했더니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었어요.
사실 내가 흔들렸다기보다는
주변에서 흔들리게 했어요.
조각가냐 화가냐, 이제부터는 조각 안 할거냐
이런 식의 질문이
나를 부자유스럽게 하더라고요.
조각을 멈추고 그림만 그리게 된 거는
5년 전 쯤에 유명한 화가 선생님이 오셔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으니까 당분간 조각에서
손을 놓고 그림에 올인을 해라.'
’다 가지려고 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저한테 도움이 되어서,
조각에 대한 미련들을
다 버리고 그림에 집중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는 꿈을 표현하기 위해서
조각이든 그림이든 퍼포먼스든 , 그리고
또 글이든 ,그때 그때 맞는 재료를 찾아서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Q3.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몽환적이다’라는느낌이 들어요.
작품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A 김미란 작가:
그림마다 조금씩 의미가
달라요.
제 그림 중에서 노란 나무숲이 있는데,
강물 위에 떠 있는 나무 숲 꿈을 그리면서
제가 그림 속으로 은신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제가 휴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숨는 거죠.
현실로부터, 시끄러운 일로부터 숨어서 혼자 쉬는 거예요.
또 숲 속에 있는 이불 작품 같은 경우는
이불이라는 그 모티프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제가 봤던 3가지 환영 같은 건데,
그걸 그리면서 가장 먼 기억을 소환해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그런 경험을 해요.
그 소환과정에서 기억만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그 시대만의 문화와 당시에 살아 있던
신화들이 다 같이 되살아 나게 되죠.
제 작품 속에 이런 의미를 담으려고 했어요.
Q4. 다 똑같이 의미 있고 소중한 작품이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을까요?
양탄자를 타고 강을 건너는 노인2
A.김미란 작가:
물 위에 떠 있는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대비 되는 나무숲인데
그 작품은 제가 갖고 싶어요.
그 작품은 내가 걸어 들어갈 수가 있어요.
그리고 빛이 가득해서, 그냥 보고 있으면 힐링이 돼요
반짝거리는 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을 줘요
Q5. ‘꿈은 알고 있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쓰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A.김미란 작가:
제목은 <꿈은 알고 있다> 예요.
이 책은 출판하려고 쓴 것이 아니예요.
헤이리로 작업실을 옮겼을 때 부터 쓴 일기를 추려서 만든건데,
애초에 A4 360페이지 정도 되는 거를
90페이지로 줄인 거예요.
헤이리 작업실에 왔을 때 아무도 안 만나고
고립돼서 , 눈뜨고 눈감을 때까지 작업만 하다 보니까 저녁 무렵이 되면 외로워요.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일기를 썼어요.
외로워도 쓰고, 화가 나도 쓰고, 기분이 좋아도 쓰고, 억울해도 쓰는 거예요.
일러 바치듯이 썼어요.
그리고 꿈을 연구하면서,꿈에 대해서 정리를 하다 보니까 ‘아, 이게 혹시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원고를 출력해서 출판사에 가지고 가서 보여줬는데,
‘미술문화’에서 이건 책이 되겠다 해서
출판하게 되었어요.
사적인 일기들은 빼고
꿈에 대한 작업 노트 시리즈로 엮었어요.
만약에 꿈에 대해서 책을 낼 거니까 글을 쓰라 했으면 못썼을 거예요.
"김미란 작가는
꿈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세상과 소통했고,
꿈을 통하여
내면의 세계를 넓혔으며,
꿈을 통하여
그 세계를 이제 밖으로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