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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황 ‘RED SIGNAL – 젖은 도시의 독백’

작가노트
 
한 가지 형태가 기억이란 단어로 떠오른다. 색이 없는 형태다.
꿈속인 듯하다. 꿈은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빛이 존재한다. 어둠 또한 공존한다.
빛의 선상에 나란히 어두움이 배치되고 현실에서 나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르고 추억이라 이름 지을 때를 기다린다.
 
도시에 비가 내리면 기다리던 기억도, 감추려 했던 추억도 함께 내린다.
도시라는 공간은 기억을 잡아두기에 너무나 화려하다. 비가 내리면 시나브로 삭막하게 증발한 기억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흐른다.
빛의 기억 그것은 온전히 색을 배제하기도 한다.
기억의 콘트라스트, 그 흑백의 계조처럼.
그리고 독백은 시작된다.
 
나는 도시의 잔상과 빛과 기억들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도시 속의 비, 젖은 도시 이미지를 테마로 하고 있다.
큰 도로를 지나면 여러 차례 비를 맞을 것이다. 한동안 메마른 햇볕의 열기가 드디어 비가 되어 도시를 적신다.
 
차도 위에 비치는 헤드라이트의 반영은 눈부시고 기다란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거리의 사람들도 차들도 건물도 젖은 거울을 보며 울고 있는 듯하다.
잠시 빗속에서 길을 잃고 나는 빨간불이 다시 켜지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 사이의 공기와 부대끼고 그 속에 섞여 공존한다. 매일 아침 어디로 갈지 뻔한 길을 나서고 아무도 모를 하루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다.
 
하루 동안 우리는 차 안에서 거리에서 또는 건물 밖 풍경들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가?
어떤 색을 보았는가?
어떤 이름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위해 하루를 살았는가?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매일 집을 나선다.
수많은 사람과 도시의 건물과 자동차 그리고 많은 사연을 지나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러한 도시의 여정을 빛의 대비, 모노 톤의 형태로 기억하고 표현하고 싶었다. 나에게 빨강 신호등은 멈춤의 신호가 아닌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기다림과 희망의 신호다. 색의 배제와 형태 속에 나를 잠시나마 쉬게 하는 빨강 신호등만 기억하는 이유다.
 
가끔 먼 여정에서 돌아올 때 나는 그곳의 잔상들을 떠올리곤 한다.
감정과 색 모두를 흡수해 버린 선과 빛과 그림자로만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들...
그것은 나만의 독백이고 보는 이의 또 다른 독백이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독백으로 저마다의 색을 입힐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어 낡은 블랙박스는 오늘도 어눌하게 침침한 눈을 부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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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황 Lee Eun-Hwang
 
1997. 경기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2001.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개인전
1회 2015. 남양주 아트센터
2회 2016. 혜화아트센터 / 혜화동
3회 2016. 갤러리 페이지/ 방배동
4회 2017. 희수갤러리 /인사동
5회 2017. 블랙스톤 갤러리 /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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